천연도료로서의 옻칠의 우수성
▣ 천연도료로서의 옻칠의 우수성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칠은 서양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동양에서만 발달된 특유의 천연도료다. 옻나무 줄기에 상처를 주어 채취한 생옻은 회백색의 액체지만 공기와 접촉하면 갈색으로 변한다. 생옻의 주성분은 옻산이며, 그밖에 고무질, 질소질과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
옻산은 합성칠로는 흉내낼 수 없는 효소반응에 의한 3차원 구조의 고분자를 형성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옻칠은 산이나 알칼리에 쉬 녹지 않으며, 내열성, 내염성, 방부성, 방수성, 방충성, 절연성이 뛰어나 예로부터 내구성이 요구되는 각종 생활용품과 기물에 사용돼 왔다.
옻이 가진 부패방지와 항균효과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이나 북한 묘향산의 팔만대장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7백여년 동안 각기 다른 장소에서 보관중인 대장경판의 표면이 온전하게 보호될 수 있었던 것은 옻칠 덕택이라는 사실이 최근의 연구로 밝혀졌다. 특히 이들 경판에 칠이 벗겨진 부분만 유독 훼손이 심했던 점에서 옻칠의 성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도료가 필요한 모든 재료에 옻칠을 사용했다. 나무는 물론이고, 가죽, 종이, 삼베, 모시, 명주와 같은 천, 금속, 도기 등등에 이르기까지 옻칠을 사용했다. 옻칠이 실생활과 얼마나 밀접했는지는 옻칠을 입힌 재료에 따라 물품을 고유 이름으로 불렀던 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즉 금태칠기(金胎漆器: 녹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금속에 옻칠), 와태칠기와 도태칠기(瓦胎漆器 또는 陶胎漆器: 토기나 도기 표면에 옻칠), 지승칠기 및 건칠칠기(紙繩漆器, 乾漆漆器: 종이를 백골로 한 옻칠로 경주 기림사의 보물 제415호 건칠보살좌상이 좋은 예다), 대모칠기(玳瑁漆器: 거북 껍데기에 옻칠을 해 장식), 금박칠기(金箔漆器:금박을 옻칠로 붙인다)와 나전칠기나 칠화칠기 등이 그것이다.
옻칠은 이처럼 예로부터 각종 생활소품, 공예품 등에 사용돼 왔으며, 오늘날은 무공해 도료로 해저케이블선, 선박, 비행기, 각종 첨단 기기 등에 산업용으로 이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흔히 우리나라 옻나무에서 생산되는 생옻은 세계 최고의 품질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중국과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옻액의 구성성분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한국산 옻액이 최고의 품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이유는 옻산의 함량이 일본산이나 중국산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옻산의 농도는 옻칠의 품질을 좌우한다고 알려져 있다. 옻산의 농도가 높으면 칠을 할 경우 도막(塗膜)이 두껍게 생기고, 투명성이나 광도가 좋기 때문에 옻칠 산업이 발달된 일본에서조차 한국산 옻액을 최고로 친다.
옻 품질은 채취시기에 따라 다르다. 초칠(6월 하순에서 7월 중순사이에 채집)이나 말칠(8월 하순에서 9월 하순 사이에 채집)보다 성칠(盛漆: 7월 하순에서 8월 하순 사이에 채집한 것)이 채집량도 많고 품질도 좋다.